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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규제의 성실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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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름답다. 그러나 정책이 근거가 빈약한 것은 위험하다. 잘못하면 애매한 기준으로, 애매하지 않은 개인의 정당한 권리가 국가 권력에 의해 침해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가 SNS, 앱 심의 전담조직 신설을 강행했다가 일으킨 논란이 그 명백한 예다. 누구의 트윗을 누구의 기준으로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문제되는 SNS를 규제한다는 말은 간단하지만 이렇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단순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이 같은 부실한 규제의 성실함이다. 불법적 개인정보 공개의 근원으로 지적되어 온 인터넷 실명제(정식 명칭은 ‘제한적 본인확인제’), 국내 게임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와 청소년 인권 침해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게임 셧다운제, 그리고 위에 소개한 최근의 SNS 검열 시도까지 한국 정부의 일관된 원칙 아닌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편향된 근거와 무리한 규제다. 그렇다면 이 같은 문제의 시발점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뿌리를 찾기 위해 잠시 다른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버드 로스쿨의 조나단 지트레인 교수와 존 폴프리 교수가 2011년 12월에 ‘사이언스’에 ‘더 나은 인터넷을 위한 더 나은 데이터'(Better Data for a Better Internet)란 논문을 기고하면서,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통신 수단인 인터넷이 지속적으로 정부와 상업 세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했다. 논문 제목에서 보듯, 그들이 통렬히 지적한 것은 브로드밴드 관련 정책은 통신사 자료에, 청소년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안은 인터넷 콘텐츠의 청소년 유해성을 주장하는 단체의 자료에 근거하는 인터넷 정책 결정의 편향성이다. 단적으로, 2011년 12월 5일 ‘하버드 크림슨’과 한 인터뷰에서 폴프리 교수는 현재 인터넷 정책은 너무나 부족한 데이터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트레인 교수는 사람들은 인터넷 정책을 자신의 이념적 신념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교수들의 주장이 바다 건너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어만 바꿔놓으면 더 절실하게 한국 이야기다. 익명으로 타인을 함부로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실명제를 해야 하고, 게임으로 중독 되는 아이들이 있으니 셧다운을 해야 하고, SNS 여론이 문제가 되니 검열을 한다는 논리는 첫째 그 지적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의 입장만 대변해 왔다. 둘째, 그 규제를 실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그 같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피해의 원인 제공과는 관련 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어떤 다른 피해를 입을 지에 대한 고민은 고려되지 않았다.

이 같은 인터넷 실명제, 게임 셧다운제, 그리고 SNS 검열이 조금 식상하다면, 정부의 성실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신선한 예도 있다. 지난 2011년 12월14일 경실련과 진보넷은 방통위의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이 이통사의 합리적 망관리 명목으로 마이피플과 같은 mVoIP를 차단할 수도 있다면서 의견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자료 편향’의 논리에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문제점이 불거진 것은 놀랍지 않다. 망 중립성 정책 결정의 상당 부분이 통신사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고, 특별히 망 관리 항목이 그러하다면, 관련 정책이 왜곡될 여지는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이 같은 부실한 규제의 성실함은 정보통신부 이래 우리 정부가 내세운 IT 강국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담당자들이 인터넷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더 뿌리 깊은 문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경제 발전의 수준이 높고 민주주의가 보장돼 있어도 실질적으로 국민이 자기 권리 행사를 할 수 없는 나라는 개인에게 있어서 좋은 나라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IT 인프라를 구축하고 우수한 콘텐츠가 보급돼 있어도 실질적으로 국민이 그것을 안전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반쪽뿐인 IT 강국이다. 진정한 IT 강국은 산업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라 관련된 국민의 기본권 보호도 강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역으로, 진정으로 IT 산업이 강해지는 길이기도 하다. IT는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우리도 스티브 잡스와 마크 쥬커버그와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해법은 지금껏 보여온 성실함을 다른 방향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편향되지 않은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자료에 의거해 정책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산업의 발전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실시하면 된다. 그와 같은 인터넷 정책의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이 뿌리를 내릴 때, IT가 강할 뿐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한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같은 개혁은 더욱 가치가 있다.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winstonavich/189032152.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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