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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만들고 죽이는 것들

2010년 아이폰 쇼크 이후 나타난 한국 사회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만드나 혹은 어떻게 하면 한국에도 구글, 애플 같은 회사를 만들 수 있나일 것이다. 서점에 가면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각종 스티브 잡스 따라하기 교본이고, 지금도 잡스의 이름은 적지 않은 마케팅 효과를 갖고 있다. 달리 말하면 잡스의 유산은 그의 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사회에 우리가 좀 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회로 진척하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화두를 남겼다.

이 화두를 푸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물 중심으로 푸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도 중심으로 푸는 것이다. 인물 중심으로 푼다는 건 우리 사회가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못 간 이유가 그런 인물이 없어서라고 보는 거고, 제도 중심으로 푼다는 건 이미 그런 인물들은 있는데 그들이 설 자리가 없어서라고 보는 것이다. 어느 쪽으로 푸는 것이 더 생산적인 방식인가.

기존의 방식은 인물 중심의 문제 해결을 선호한다. 국가부터 기업, 기업부터 학교까지 온갖 한국의 스티브 잡스 만들기 시리즈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발굴하고 안 되면 육성하자라는 논리다. 외골수 스티브 잡스는 남들 가는 길이 아니라 자기 가는 길을 갖고, 정해진 틀에 맞춰서 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기가 커갈 틀을 만들었지만, 그런 이해는 배제됐다. 어찌보면 스티브 잡스는 명분일 뿐이고, 우리가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타이틀만 바꿔서 진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본을 따라하든, 미국을 따라하든, 소니를 따라하든, 이젠 애플을 따라하든, 그 동안 우리가 해 왔고 잘 해왔던 것이 따라하는 것 아닌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의 구절을 패러디하자면, 카피캣 함부로 욕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그토록 오리지널이었던가.

이에 비해 제도 중심적 문제 해결은 이미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들은 있다고 보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최근 방송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K팝 스타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된다. 이들 프로그램은 이미 될성부른 싹은 있다고 전제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이 활약할 무대라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창조적, 혁신적 사회적으로 나아는 길도 제도 중심적 문제 해결은 이미 그런 인재는 있다고 보고 다만 그들에게 좀 더 많은 기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제도 중심적 문제 해결법의 타당성은 현실이 입증한다. 아이폰 쇼크 이후 한국은 소위 제2의 벤처붐을 맞이했다. 우후죽순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이전 이명박 정부, 그리고 최근 취임한 박근혜 정부는 이들에게 창조경제의 희망을 걸고 각종 정책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어디서 이런 스타트업들이 쏟아져나온 건가? 사람들이 갑자기 창조적, 혁신적이 된 것인가? 아니다.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가 새로운 디바이스와 플랫폼의 진화와 융합이 일찍이 도전을 꿈꾸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반대로 왜 아이폰 쇼크가 사실상 쇼크가 아니고 ‘축복’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잡스옹의 충격파가 있기 전까지 국내 ICT 산업은 한국형 모바일 플랫폼 표준 규격(WIPI)의 저주에 갇힌 갈라파고스였다. 국내에서 나름대로는 모바일 시장을 키웠다고는 하지만 세계 트렌드와는 걷도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이 주장을 수용한다면, 이는 그저 우리가 지금껏 해 왔던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제가 창조성이 떨어지는 ‘인재’들에 있지 않고 그 창조성을 떨어뜨리는 ‘제도’에 있다고 한다면, 그러한 제도를 만들고 지금껏 해왔던대로 해오던 기득권은 이제 ‘개혁’의 대상이 된다. 질문은 이제 어떻게 하면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만드나’에서 ‘누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죽이나’로 바뀐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한국의 스티브 잡스를 살릴 수 있나’로 나아간다.

먼저 답부터 공개하면, 그 답은 간단하다. MIT 경제학과의 대런 에이스모글루와 하버드 정치학과의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작년에 발표한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의 분석틀에 따르면 망하는 제도의 특징은 착취적이고, 흥하는 제도의 특징은 포용적이다. 단기적으로 보기엔 착취적인 제도가 잘 나가는 것 같아도, 길게 보면 포용적인 제도가 결국 이기게 되어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우리의 세계사 뇌세포를 살려 보자.

정상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면 대부분 알듯이 근대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발족했다. 그러나 왜 그런가? 시계를 조금만 돌려 대항해시대로만 가도 영국은 주도적 국가가 아니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가 신세계 개척에 앞장섰다. 향후 영국의 식민지가 된 미국과 캐나다가 포함된 아메라카 대륙도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콜럼버스가 발견한 것이다. 영국은 이들 남유럽 국가 함선의 뒤를 쫓아다니며 노략질을 하기에 바빴다. 시쳇말로 해적국가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랬던 영국이 최후에 웃는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인가?

이는 역설적으로 영국이 대항해시대에 뒤졌기 때문이다. 일찍이 왕권집중화를 이룩한 스페인, 포르투갈과 달리 영국은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정)를 통해 국왕권과 귀족권간의 상호 견제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스페인, 포르투갈처럼 세금 징수를 늘리고 그렇게 확보한 예산을 쏟아서 대항해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국왕이 의회의 허락 없이 함부로 무리한 예산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적 배경은 이후에는 영국에게 되레 득으로 작용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 왕권의 가호를 받은 그들 함대가 획득한 금은보화는 결국 왕실 재정이다. 기득권은 갈수록 더 공고해진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그들의 반해군, 반해적이 획득한 재화는 ‘젠트리’라고 하는 신흥 상공세력이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 공업 생산과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산업 혁명이라는 하는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등장했을 때, 영국은 기득권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신흥 세력은 상대적으로 강했기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시대적 변화에 더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사례가 상대적으로 착취적 제도이고, 영국의 케이스가 포용적 제도다. 착취적 제도는 단기적 성장에는 빠르지만 분배가 한쪽에 치우쳐있기 때문에 새로운 물은 들어오지 않고 고인 물은 썩게 만든다. 포용적 제도는 단기적 성장은 좀 느릴 수 있으나 새로운 물이 끊임없이 들어오기 때문에 고인 물이 가만히 있기 어렵게 만든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래서 포용적 제도가 웃게 돼 있다. 한국의 제도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영국 중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그 가운데서도 한국의 인터넷 정책은 어떤가?

냉정하게 말해서 철저히 공급자 중심이고 분배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한국의 인터넷 정책은 착취적 제도에 가깝다. 인터넷은 전세계에서 가장 빠르다지만 (왜 그렇게 빠른지, 빨라야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글로벌 인터넷 검열 연구 프로젝트인 오픈넷 이니셔티브(ONI)는 그들의 국가 보고서에서 한국의 온라인 표현 규제를 민주주의 국가 중 최악으로 표현했다. 작년에야 헌법재판소에서 한정위헌 판결을 받은 엘리트 신상 보호법인 동시에 일반인 신상 공개법인 제한적 본인확인제(속칭 ‘인터넷 실명제’), 이명박 정권 때 인기를 끌었던 사이버 모욕죄, 전국민의 금융 결제 스트레스와 관공서 웹페이지 방문 알레르기를 유발한 공인인증의무제, 하나도 모자라 3개 부처에서 트리플 앙상블로 만든 게임 셧다운제 등을 생각하면 그건 오해라고 항변도 못하겠다.

인프라 구축에는 그렇게 열심이고, 미래의 신산업 동력을 찾는데 그렇게 땀흘리는 정부께서 왜 소비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이용자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그것을 통해 디지털 시장 질서와 복지 사회를 실현하는 데는 게으른지 그 이유는 차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득권은 견제할 수 있고 신흥 세력은 키워줄 수 있는 사회가 새로운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한다면, 그래서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국가가 된다면, 그래서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죽지 않고 산다면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 기득권의,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ICT 정책이 우리 ICT 정책의 전부라면, 그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만들든 말든 결국 국민 경제에 국민 권리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그런 사회가, 그런 디지털 사회가 우리가 꿈꾸고, 원하고, 바라는 대한민국인가.

착취적 제도를 포용적 제도로 만드는 건 그냥 밤에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 해가 뜨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자유(freedom)는 공짜(free)가 아니다. 기득권은 바란다고 약해지지 않고, 신흥 세력은 원한다고 성장하지 않는다. 그 길을 여는 것은 기존 질서 하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새로운 질서 하에서 직접적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다수 국민의 몫이다. 기득권의,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ICT 정책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그게 정말 아니라 생각한다면, 인터넷 마그나 카르타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몫은 네티즌에게 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정책을 아전인수격으로 입안하고 집행하지 말라고 말할 책임은 우리에게, 나에게 있다.

그 날이 오면, 한국 인터넷에, 한국 사회에 마그나 카르타가 세워질 날이 오면, 공급자뿐만 아니라 소비자도 대접받고 이용자도 존중받는 그 날이 오면, 기존의 착취적 제도가 포용적 제도로 바뀌는 그 날이 오면, 기득권은 한풀 꺾이고, 새로운 사회적 대안 세력이 대두하는 그 날이 오면, 한국의 스티브 잡스가 무언가. 비록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은 아니나 혁신과 창조가 보편화된 나라, 자유와 상식이 일반화된 나라, 그보다 우리가 더 뿌듯하게 대한민국을 생각할 수 있는 이유가, 희망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전후기, 건국초에 많은 선각자들이 꿈꿔왔던 것처럼 우리만을 위한 비전이 아니다. 한국전쟁을 거치고 눈부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해 낸 한국의 창조와 혁신을 통한 선진사회 진입은 지구촌 190여개 국가에 새로운 사회 발전의 모델로서 존경받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인물이 아니고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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